과수원 주인이 할머니와 함께 사과 1박스를 가지고 내 사무실로 찾아 오셨다. 혼자 오실 수 없다기에 같이 왔노라며 나에게 할머니를 소개했다. 그 할머니는 너무 고마워서 어떻게 은공을 갚을까, 여러 날 동안 생각했단다. 사과로라도 공을 갚아야겠다고 생각하고 동네 과수원에서 하루 사과를 따주고 그 일당으로 사과 1상자(15kg)를 샀단다. 과수원 주인에게 사정을 얘기했더니 사과도 많이 주고 실어다 주어 여기까지 오셨단다. 78세나 되시는 할머니, 쪼글쪼글하신 손이 거칠지만 나는 그 손을 꼭 잡아 드리고 손을 부벼드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그 할머니를 꼭 껴안아드렸다. 한 참 동안을…….
지난 3월 하순으로 기억된다. 오후 6시쯤 되었을까 작은 소녀 하나가 아내에게 다가왔다. 통학버스를 놓쳐서 그러니 자기 동네까지 태워다 달라고 했다. 나는 그 아이를 2km쯤 떨어진 아이네 동네까지 데려다 주었다. 차 안에서 물어 보니 나이는 8살, 초등학교 1학년 김○○이라고 했다. 무척 똑똑한 아이였다. 아빠는 인천에서 배를 타시고 할머니와 언니와 함께 살고 있단다. 조손가정이었다.
할머니를 만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큰 손녀는 고등학교 1학년 김○○(17세), 돌도 지나기 전 부모가 헤어져 할머니 손에서 컸단다. 아들이 재혼을 했다기에 좋아했는데 딸아이가 6살 때 다시 집에다 데려다 놓고 어디론가 나가 버렸단다. 인천에서 배를 탄다고 아이들에게 편지 연락이 와서 지금 그곳에 있는 줄 안단다. 78세 된 할머니는 아들이 속을 차리지 못하여 일어난 일이지만 아이들이 불쌍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하며 아이들을 키우신단다.
한 시도 쉴 틈 없이 노동도 하고 남의 집 일도 하면서 아이들 뒷바라지를 하고 있었다. 그래도 큰 아이가 “할머니 고생 하시는데 제가 꼭 잘 모실께요.” 하는 소리를 들으면 그동안 고생이 눈처럼 녹는단다. 그래서 더 열심히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하고 있단다. 아이들의 아버지는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살고 있으니 생활이 말이 아니었다.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기억은 없다. 아버지에 대한 기억도 ‘술’을 잘 마시고 항상 취해 있는 모습뿐이라 했다. 그래도 작은 아이에게서 아버지가 며칠 뒤 휴가를 오신다고, 그 아버지를 기다리는 마음을 읽을 수가 있었다. 나는 그 아이들에게 외부장학금도 연결해 주고 직접 마련한 조그마한 정성을 전해 주기도 했다.
나의 그 작은 정성이 그 할머니에겐 그렇게 오래토록 고마움으로 남아 있었던 모양이다. 할머니의 가슴은 따뜻했다. 한참을, 아니 오래토록 안아드렸다. 그리곤 귓가에 대고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드렸다. 할머니의 주름이 패인 얼굴에는 성취감을 만끽하는 듯 환한 웃음을 짓고 계셨다. 조손가정(祖孫家庭), 사회, 문화적 사각지대인 농촌지역에서 부모와 떨어져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들, 만성적인 열악한 경제사정으로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이 어찌 이들 뿐이겠는가. 조손가정(祖孫家庭 )이 안고 있는 어려움들은 동정의 대상이지 제도적 배려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기만 하다.
나는 며칠 전 그 아이들을 다시 찾았다.나는 그 아이의 두 손을 꼭 잡아주고 그 손에 만원짜리 지폐 10장을 쥐어 주었다. 동생이 조를 때에도, 짜증을 낼 때에도 언니인 네가 챙겨주고 동생 친구들을 위해 피자도 사주라고 하였다. 할머니는 내가 죽고 나면 누가 저 애들을 돌볼지 걱정이라며 1학년짜리 손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정말 고마운 선물이다. 값이 많이 나가서가 아니라 뜻이 깊은 선물이다. 나는 이 사과를 혼자 다 먹을 수가 없었다. 아내와 상의하고 몇 개를 꺼내 놓은 뒤 전주에 있는 정신장애우들의 시설에 전해 주었다. 아이들을 만나고 돌아 왔는데도 내 마음이 무척이나 허전했다. 그 할머니의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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