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를 마친 콩밭에 허수아비만 덩그러니 서 있다. 모자를 쓰고 복색을 제법 그럴듯하게 갖춰 입었지만 한눈에 봐도 허수아비는 허수아비다.

문제는 요즘 새나 들짐승 눈치가 예전과 달라 허수아비를 세워놓아도 깔본다는 것이다.

아마 먹잇감을 찾는 환경이 옹색해져 생존에 대한 본능이 예리하게 작동한 탓일 것이다. 어떤 새는 허수아비 머리를 쉼터 정도로 생각하고 한참동안 앉아 쉬어가기도 한다.

멧돼지는 허기져 예민해진 성질을 허수아비에게 부리기도 한다. 아랫마을 동식이 아저씨는 콩밭에 하수아비를 다섯 개나 세우고 멧돼지 침입을 막으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모두 멧돼지 발굽에 밟혀 허망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허수아비는 본디 사람 형상을 한 인형을 일컫는다.

어원을 분석하면 접두사 ‘헛’에 ‘우+아비’로 이루어져 있다. ‘헛’은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꾸민다는 말이다. ‘우’는 아버지를 낮추어 부르는 ‘아비’와 ‘헛’을 부드럽게 있는 조음소이다.

그래서 허수아비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거짓 사람’을 말한다.

이 말이 주어진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사람을 빗댄 것으로 변했다.

요즘 이른바 최순실, 박근혜 게이트와 관련해 심심찮게 허수아비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다. 검찰이 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과정에서 대통령이 직접 개입한 정황을 많이 발견하고 있다. 민심은 대통령에 대해 등을 돌려 지지율이 5%에 머물고 퇴진이나 하야를 주장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대통령은 검찰조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겠다는 약속을 어기고 검찰이 제시한 조사날짜를 변호사를 통해 연기했다.

이제 대통령에 대한 신뢰는 추락할대로 추락했고 대통령 권위도 밑바닥이다. 그래서 대다수 국민은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보고 있다.

심장이 없는 허수아비에게 아무리 좋은 옷을 입혀도 사람이 될 수 없다. 생각이 없는 하수아비에게 멋있는 모자를 씌워도 사람이 될 수 없다. 대통령이 국민에게 신뢰를 잃어 권위가 떨어졌다면, 허울만 대통령이지 심장이나 생각이 없는 허수아비나 마찬가지이다.

허수아비는 사람이 입혀 준 복장을 하고 세워놓은 곳에만 있다. 한 마디로 주체적 의지가 전혀 없다.

그래서 허수아비는 꼭두각시와 도긴개긴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것을 보면 대통령은 정호성 비서관에게 “이거 최 선생님에게 컨펌(confirm, 확인)했나요?”나 “빨리 확인을 받으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국무회의 일정이나 청와대 보고서를 최순실에게 자문을 구했다. 이런 점을 종합해보면 최순실은 대통령을 청와대에 허수아비처럼 앉혀놓고 대통령 행세를 했다.

그리고 대통령은 최순실 꼭두각시노릇을 했다.

진실은 언젠가 민낯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오래 전 이른바 정윤회 문건 파동 때 최순실이가 우리나라 권력서열 1위라는 말이 떠돌았다. 이 말이 이제 뜬소문이 아니라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대통령이 기본적이고 상식적인 통치철학을 가졌다면 자신이 임명한 각료나 비서관을 통해 국정을 수행할 지혜를 구했을 것이다. 열린 사고나 가치관을 가졌다면 민심을 경청하거나 야당과도 협력했을 것이다.

그래서 대다수 국민이 대통령이 사이비종교에 빠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다. 대통령으로서 갖추어야 할 기본마저 없기 때문이다.

축제장 분위기를 끌어올리려고 허수아비를 세우기도 한다.

이런 허수아비는 귀엽고 익살스러워 눈요기하는 맛이라도 있다. 그러나 콩을 거둬들인 밭에 서 있는 허수아비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

허수아비를 세우고 빼는 일은 주인이 한다.

민주주의에서 주인은 국민이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지금 이번 사태와 관련하여 대통령이 책임을 지라는 것이다. 허수아비 같은 대통령 밑에서 허수아비 같은 국민으로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최재선 한일장신대 인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