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한 보통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2차 촛불집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렸다.

5일 밤, 서울 광화문 네거리에서 주최 측 추산 20만 명이 육박하는 인파가 몰렸고, 여당의 텃밭인 대구ㆍ경북 등 전국 주요 도시에서도 크고 작은 집회가 이어졌다.

전주시청 앞 도로에서도 수천 명의 시민이 모여 ‘박근혜 정권 퇴진 전북지역 비상시국회의’가 열렸다. 집회에는 교복을 입은 중고등학생, 대학생,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 종교인, 문화예술인 등 계층도 다양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이것이 나라인가’, ‘나가라 박근혜’, ‘박근혜는 물러나라’, ‘사과말고 퇴진하라’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구호를 목청껏 외쳤다.

과연 이게 정상적인 나라인가? 끓고 있는 국민의 기름에 최순실이 성냥불을 그어댔다.

사이비 교주 최태민의 딸 최순실이 뭔데, 그가 이토록 나라를 혼란으로 내몰리게 하는가? 상황이 생각 이상으로 심각하다. 국정마비가 아니라 국정붕괴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가 ‘비선실세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인해 한자리수인 5%로 추락했다.

이는 역대 대통령 지지율 중 최저치다. 국민 절반 이상이 하야(下野), 또는 탄핵을 요구한다는 충격적 내용까지 있었다. 절대 다수 국민이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나라꼴이 이 지경이니 대통령 리더십의 붕괴가 외교ㆍ안보를 포함한 국정 전반의 차질과 공백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경제를 포함한 모든 지표와 양상이 한곳을 가리키고 있다. 대한민국호(號)의 난파 가능성이다. 결코 과장이 아니다.

“누구는 밤낮없이 일해서 먹고 살기도 빠듯한데, 기업에 수십억씩 등쳐서 호의호식하는 꼴이라니. 준 놈, 받는 놈 다 잡아 넣어야 해요. 대통령이 아니라 삥 뜯는 얼굴마담이었어요.”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이 구속되기 전, 한 경제신문에서 읽었던 어느 시민의 볼멘소리다.

지금 국민들 먹고 사는 게 말이 아니다. 자영업자는 임대료조차 낼 수 없어 매장을 비우고,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유랑민처럼 떠돈다.

집값, 전세는 천정부지로 뛰고 물가마저 들썩거리고 있다. 내일의 삶이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도 없다. 국민 모두가, 국가 전체가 엄청난 절망의 늪에서 허덕이는 모양새다.

요즘 두셋만 모이면 최순실 얘기뿐이다. 가정이건 직장이건, 식탁이건 사람들은 최순실과 그에 놀아난 대통령을 비난한다.

국가가 통째로 농락당했다는 자괴감과 수십, 수백억의 검은돈이 따지고 보면 내 호주머니 쌈짓돈이라는 사실이 참기 어려운 것이다.

국민을 위해 쓰여져야 할 국가권력을 개인의 재산 축적을 위해 동원하고, 공동체에 필요한 일을 하도록 맡겨진 국가관료 조직을 머슴처럼 부리고, 기업과 대학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함부로 훼손한 행위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선의라고 하지만 선의라는 것도 과연 존재했는지 믿기 어렵다.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일군 기업의 부를 자신의 측근을 위해 쓰도록 강요한 일은 결코 선의의 영역에 포함될 수 없는 것이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최순실이 아니라 대통령에 있다.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라 ‘박근혜 게이트’다. 박 대통령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통치권을 일개 민간인에게 넘겨 국정문란을 초래했다. 그에 따라 발생한 각종 불법과 비리가 박 대통령이 지시한 결과라는 사실도 박 대통령의 입을 통해서 나왔다.

최순실씨 패거리를 공직자로 등용하고 최씨의 비행을 지적한 공무원들의 목을 친 당사자도 바로 박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이 아니면 박근혜 게이트의 전모를 밝힐 사람이 없다. 검찰은 명운을 걸고 이 사건 전모를 파헤쳐야 한다.

이미 구속된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 외에 미르ㆍK스포츠 재단개입 의혹을 받고 있는 차은택 광고 감독, 그리고 최순실씨 가족들, 이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그래서 누구든 범죄 혐의가 드러나면 가차 없이 처벌해야 한다.

세월무상도 있지만 ‘정권무상(政權無常)’이란 말도 있다. 권력이란 무상한 것이요, 허무한 것이다.

한 세대가 지나가면 아무리 당대에 위세를 떨치고 나는 새라도 떨어뜨릴 듯 싶던 권력도 쇠잔해 가게 마련이다. 박근혜 대통령 퇴임 후가 걱정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영규 한국신문학협회 사무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