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무르익으면서 곳곳에 단풍이 물들어 높아지는 하늘처럼 청명해진 거리의 바람결이 어느새 쌀쌀함을 더하고 있다. 단풍으로 갈아입은 나뭇잎이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봄이나 여름의 그것과 다르게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춘경추실(春耕秋實)이라했던가? 봄에 밭을 일구고 가을에 열매를 거둔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인과 결과, 노력하는 삶을 이야기할 것이다. 필자는 오랜 공직 생활 끝에 장애인복지분야에 발을 디뎌 두 번째 가을을 맞이하며, 춘경추실(春耕追失)의 다른 생각이 든다.

봄에 일구고 가을까지 기다려야 열매를 얻는다는‘기다림’이다. 기다림은 나에 대한 여유이며, 상대에 대한 배려이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도 기다림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한다.

2008년부터 시작된 중증장애인활동지원사업을 통해 장애인들의 사회참여가 꾸준히 늘고 있다. 당연히 장애인을 대면하는 일도 증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장애인 활동보조인으로 활동하며 장애인과 밀접하게 생활하는 비장애인도 많아질 것이다.

전라북도장애인복지관에서는 중증장애인활동지원사업을 시작한 이래 활동보조인양성교육기관으로 지정받아 매년 800여명의 활동보조인을 배출하고 있다.

물론 그 많은 사람들이 모두 현장에서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교육과정을 통해 장애에 대한 막연한 편견을 떨치고 이웃으로 동료로 대할 수 있는 소양을 익힐 수 있는 것만으로도 교육사업의 의의가 크다고 볼 수 있다. 40시간의 전문교육 소양교육 과정으로 오늘 여기서 모두를 소개하고자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장애인을 대면할 때 여러 가지 감안해야 할 부분들이 있지만, 필자는 기다림 한가지를 말하고자 한다. 장애특성상 느리게 결정하고 행동하는 장애인분들이 있는데, 혹자는 그것을 대신해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 생각하여 기다리지 않고 얼른 대신 해주는 경우가 왕왕있다. 조금 느릴 뿐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소 시간은 오래 지연될 수 있지만 그들의 개인차를 인정해주고 기다려 준다면 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TV와 언론에 화를 참지 못하고 저지르는 범죄, “분노조절장애”때문이라는 좋지 않은 소식들을 접하게 된다.

중국 전국 시대의 사상가 맹자는 사람은 모두가 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씨앗’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仁義禮智(인의예지)의 사덕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학에서,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성품. 곧 어질고, 의롭고, 예의 바르고, 지혜로움을 이른다.

오늘날에는 마땅히 갖추어야 할 사덕의 품성 중 사양지심 [辭讓之心]이 어느때 보다 필요해 보인다. 상대방을 공경하고 자신을 앞세우려하지 않는 것 즉, 겸손하고 양보하는 자세가 부족해서일 것이다.

슬로시티(Slow City)는 민간에서 주도하는 범지구적인 운동으로, 1999년 이탈리아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공식명칭은 치타슬로(Cittaslow)이다.

슬로시티는 ‘느리게 살기 미학’을 추구하는 도시를 가리킨다. 빠른 속도와 생산성만을 강요하는 빠른 사회(Fast City)에서 벗어나 자연·환경·인간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여유롭고 즐겁게 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

슬로시티는 전통의 보존, 지역민 중심, 생태주의 등 이른바 ‘느림의 철학’을 바탕으로 지속 가능한 발전을 추구하는 도시를 뜻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느림의 미학-슬로시티 [느림의 美學-슬로시티]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우리나라가 지정되었으며, 여러 곳이 슬로시티로 지정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2010년 전주 한옥마을이 슬로우시티로 지정되었으며, 점차 범위를 확대해 지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옛날의 농경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환경친화적 느림의 미학이 우리의 인성과 성품에도 필요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느림의 미학처럼 배려와 양보, 기다림과 마음의 여유가 필요한 가을, 잠시 추상에 잠겨본다.

장현옥 전북도 장애인복지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