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촌하여 사는 곳이 순두부로 유명한 음식점이 있는 인근 마을이다.

이곳은 땅에 돌이 많고 비옥한 편이 못 되어 예부터 주로 콩을 많이 길렀다 한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난 콩으로 두부를 만들어 파는 것이 시초가 되어 두부음식점이 많이 생겼다. 값이 다른 음식에 비해 비싸지 않고 건강식이라는 이유 때문에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이 즐겨 찾고 있다.

덕분에 밥 때가 어중간하거나 입맛이 시큰둥해질 때 시내까지 나가지 않고도 편하게 들러 한 끼 정도 해결하기엔 안성맞춤이다.

방학에다 모처럼 특별한 일정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날씨가 봄날 같이 따스하였다. 온실 속에 넣어 둔 분재 화분에 물을 주고 문을 열어두었다. 복수초 다음으로 피는 영춘화는 가지마다 이미 꽃망울을 주렁주렁 매달았다. 만삭이 된 왜철쭉은 곧 양수가 터질 것 같다.

평소보다 먼 길을 걸었다. 길을 걷는 것은 단순한 보행이 아니라 내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다. 그리고 시감을 찾는 시간이기도 하다.

내가 쓴 시는 대부분 산책을 하면서 떠오른 시상을 붙잡은 것이다. 마음의 문을 열고 눈을 크게 뜨고 찬찬히 걷다보면 천지가 다 글밭이다.

전기울타리에 보일 듯 말 듯 핀 서리꽃, 안개비 내린 뒤 가지 끝에 만발한 물꽃, 사람들 발길에 차이고 밟히면서도 서로 길바닥에 어깨동무 하고 사는 돌멩이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건성으로 넘길 게 없다.

아침을 대충 먹고 나선 탓인지 당황스럽게 허기가 몰려 왔다. 주말이지만 작업실로 출근하다시피 해온 터라 몸을 씻고 이른 점심을 먹으려고 집을 나서 순두부집에 들렀다. 내 돈 내고 밥을 먹으면서도 “나 홀로” 시키는 식사는 괜히 떳떳하지 못할 때가 있다. 워낙 사람들이 많아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모 문학회에서 보내준 동인지를 넘겼다.

한참 후 순두부찌개가 나왔다. 뚝배기에서 팔팔 끓는 순두부에 부추를 담뿍 넣고 식기를 기다렸다. 함께 나온 앞 접시가 온몸에 시커멓게 화상을 입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반찬보다 앞 접시를 찾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한 곳이라고는 한 군데 없이 멍들고 불 타 볼품 하나 없는 앞 접시를이 사람 저 사람이 찾는 이유가 무엇일까.

뜨거운 찌개를 앞 접시에 한 두 술 뜬 다음 식기를 기다렸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혀나 입속을 델 수 있기 때문이다.

바로 옆 자리에 젊은 연인이 앉아 식사를 하였다. 한 눈에 봐도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뚝배기에서 팔팔 끓는 순두부찌개 같은 사랑을 하고 있었다. 서로에게 건네는 말씨뿐만 아니라 반찬을 상대방 숟가락에 얹혀 주는 폼이 알싸하지 않고 부드럽고 순했다.

“뚝배기에서 팔팔 끓는 / 순두부찌개를 바라본다 / 손처럼 딸려 온 앞 접시 / 불에 덴 화상 온몸에 / 검은 꽃으로 피어있고 / 뜨겁게 끓은 순두부 / 뚝배기에서 다시 끓어 / 앞 접시에 한두 술 뜨고 / 짧게 침묵하며 기다려야 / 혀 데지 않고 제 맛 안다 / 우리네 사랑도 때로는 / 앞 접시에 한 두 술 뜨고 / 침묵하면서 기다리거나 / 너무 차지 않게 호호 불어야 / 식지 않고 따스해지리라 / 넘뜨겁지 않게 후후 불어야 / 데지 않고 싱싱해지리라/염사없이* 먹은 밥처럼 / 속 허전하지 않으리라 /

*염사없다 : “마음이 없다”는 전라도 말 (졸시: 순두부찌개를 먹으며)

최재선 한일장신대학교 인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