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맑은 고라니야!

간밤 엄마 손을 놓고 이 험한 차도로 뛰어나와 차에 치여 쓰러졌구나. 태어난 지 반년도 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 엄마가 네 모습을 보면 얼마나 애통하겠니.

쓰러진 너를 길 한쪽으로 꺼내려고 서행했더니 뒤따르는 차들이 위협적으로 경적을 울려대 온몸에 닭살이 돋았다.

하도 험한 급커브길이라 너도 차가 오는 것을 보지 못했겠구나. 겨울이면 바닥이 얼어붙어 교통사고가 많이 나고 빗길에 차가 미끄러진 것을 여러 번 보았단다. 교통사고다발지역인 셈이지.

네가 쓰러져 숨진 인근에 ‘야생동물출현 빈발지역’이란 푯말이 서 있다. 그 푯말을 보지 못했지? 날이 캄캄해서도 그렇겠지만 사람들이 보기 좋은 곳에 세웠기 때문에 넌 도저히 볼 수 없었을 거야.

눈맑고야!

네 이름을 ‘눈맑고’라 부르고 싶다. 눈 맑은 고라니를 줄인 말. 쓰러진 네 몸은 축 쳐져 있었지만 네 눈은 참 맑고 깨끗했단다.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니? 네 눈이 어둔 밤에 차가 오는 것을 잘 보았다면 죽지 않았을 텐데. 우리 생각이 너무 짧았어. 네가 사는 마을 산 쪽을 향해 “위험. 건너지 마시오.”라는 말 한 마디만 붙여놓았더라면 네가 조심했을 텐데 말이야.

네가 죽지 않았다면 지금쯤 엄마와 함께 저 눈 시리도록 푸른 여름 숲을 헤엄치며 죽순처럼 쑥쑥 자랐을 텐데.

미안하다. 너에 대한 배려를 쥐꼬리만큼도 하지 못해서. 그저 너희들이 급커브길에 자주 나타나니 운전할 때 조심해서 가라는 정도로 알았으니까.

아니 아예 그 말을 무시하고 가속페달을 일상적으로 밟고 속도를 살인적으로 냈으니까.

눈맑고야!

네 부모는 지금쯤 곡기를 끊고 널 찾으러 사방팔방을 찾아 돌아다니고 계실거야.

물론 경찰서에 실종신고를 했겠지. 신고를 받은 경찰은 널 심하게 혼낸 적이 있냐고 물을거야. 네가 가출했으리라 생각하고.

네 엄마, 아빠가 평소 길을 절대 건너지 말라고 하셨지? 네가 듣기에 잔소리 같지만 어른들이 하신 말씀은 생존과 직결된 것이 많단다.

너 만할 때 호기심이 발동하는 것은 당연하단다. 그러나 호기심 뒤에는 깊고 낮은 허방이 늘 존재한다.

낮은 허방에 빠지면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지만 깊은 허방에 빠지면 도움을 받을 수 없다. 특히 죽음이라는 허방에 빠져 살아온 분은 예수님이 유일하시다.

눈맑고야!

네가 세상에 태어나 잊을 수 없는 최고 순간은 언제였니? 태어나자마자 엄마가 젖을 물린 순간이라고.

그래, 그랬구나! 그 때 우주 깊숙한 곳에서 뜨겁고 부드러운 것이 네 심장으로 빨려 들어갔지? 네 심장으로 빨려 들어간 뜨겁고 부드러운 것이 네 엄마의 사랑이었단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불효가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뜬 것이다. 그래서 넌 지울 수 없는 불효를 저지른 거야. 자식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낸 아픔을 겪은 부모 심정이 어떤지 아니?

네 부모는 지금 이 순간에도 네가 죽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시지 않으실 거야. 설령 네가 차에 치여 쓰러진 것을 보셨더라도 네가 어딘가에 살아 있으리라고 단단히 믿고 계신단 말이야. 산 자식은 가슴에 품고 살고 죽은 자식은 가슴에 묻고 사는 게 부모 마음이니까.

차 없는 세상에서 편히 잘 자렴.

최재선 한일장신대학교 인문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