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한번 태워달라는 아내의 청을 뿌리치기 힘들었다. 어지간하면 버스를 타고, 힘들면 택시를 타라고 했지만, 쉽게 택시를 부르지 못하는 성미다.

할 수 없이 아내를 차에 태우고 연주 봉사를 한다는 ㅎ요양병원에 갔다. 기왕 간 김에 공연까지 관람했다. 9년 전 겨울 어머니는 이곳 요양병원에서 운명하셨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지 못한 나는 죄송한 마음을 떨칠 수 없었는데, 불행 중 다행으로 어머니의 마지막 가시는 모습을 지킬 수 있었다.

병상 머리맡에서 사이클을 그리던 전자기기가 움직임을 멈추고 파란 선이 평행선을 긋자 의사는 돌아가셨다고 선고했다. 어머니의 일생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이 났다.

죽음이란 감았던 눈을 뚝 뜨고 혼신의 힘을 모아 “한 세상 잘 살았다. 잘 있거라.”하고 유언을 남긴 뒤 눈을 감는 것이려니 생각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렇게 죽는 사람이나 유족은 그래도 행복한 경우이리라. 너무 허무했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모호했다. 어머니의 생이 끝나기 전에 간호사가 해준 말이 생각나 어머니의 귀에 입을 대고 “천사를 따라 가세요.”라고 말했을 뿐이었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통곡을 하는 것이 예전 초상 마당의 풍경일 텐데, 너무 의례적인 절차만 남았다.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졌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는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았는데, 어머니와의 이별 앞에서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마음속으로 ‘불쌍한 어머니, 불쌍한 우리 어머니’하는 생각만 가득했다.

공연이 이루어진 강당에는 50여 명의 환자와 간병인들이 모여 있었다. ㅇ복지관 ‘그루터기’공연 팀은 사회자의 소개로 1시간 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선보였다. 전반에서는 노인들이 좋아할 민요와 판소리, 전통 춤사위를 선보였고 후반에는 아코디언 팀이‘고향의 봄’과‘어머니의 은혜’등을 연주하였다.

아내가 소속된 ‘만돌린 연주단’은 7명의 중·노년 여성으로 구성된 공연 팀인데, ‘오빠 생각’ ‘갑돌이와 갑순이’ ‘머나먼 고향’ ‘등대지기’ 등 네 곡을 연주하였다.

조금 건강한 환자분들은 박수를 치며 좋아하였지만, 그렇지 못한 환자도 있었다. 중환자들은 병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어머니가 입원하셨을 때는 이런 위문공연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머니는 종일 병상에 누워계셨다. 손자 손녀들이 찾아오면 눈빛이 조금 달라지시곤 했다. 핏기 없는 얼굴, 부수부한 흰 머리칼, 표정 없는 얼굴이 애처로웠다.

이곳은 인생의 종착점이다. 한번 이곳에 오면 좀처럼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기 힘들다. 나의 미래는 어떨까? 그런대로 수용해야 할 것인지.

붉은 티셔츠를 맞춰 입은 아내의 모습은 밝았다. 노인 환자들은 기억이 희미하겠지만, 갑돌이와 갑순이처럼 시집 장가가던 꽃다운 시절이 있었으리. 그 시절의 젊음은 어디로 사라지고 병든 육신만 남았으니 인생 허무할 따름이다.

이날 공연은 건강의 소중함을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발길을 돌리며 나는 ‘그루터기’ 공연 팀의 아름다운 봉사가 환자들에게 큰 위로가 되기를 빌었다.

김현준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