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공화국 오명을 벗자                
  신 영 규/ 수필가 자유기고가      

 표절이란 훔칠표(剽), 훔칠절(竊)의 합성어로 쉽게 말하면 도둑질을 뜻한다. 영어로는 plagiarism(플레이저리즘)이라고 하는데 어원은 라틴어plagiarius(납치하는 자)와 pla-giare(훔치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사전상의 정의는 ‘남의 작품이나 학설 따위의 일부를 허락 없이 몰래 따다 씀,이다. 표절이라는 단어는 이미 중국 당나라 문장가 유종원의 문집과 ‘제북집’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시경’의 싯귀를 따서 자기 작품에 인용하는 것이 전통적인 작시법으로 간주되었던 동양 한자문화권에서도 이미 천여 년 전부터 ‘표절’ 이라는 개념이 있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처럼 ‘표절’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도덕적인 행위라는 점을 강조한 윤리적 개념이지만 그 구체적인 판단기준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표절’의 사전적 정의 안에 내포된 핵심은 표절이 곧 ‘도둑질’이라는 비도덕적 범죄행위라는 사실이다. 여기에는 한 개인의 창작물을 베꼈고, 그 출처를 명시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그것이 마치 자신의 창작품인양 속이려 했다는 몇 가지 전제들이 인정된다. ‘표절’이라는 단어 자체가 ‘도둑질’이란 표현이 반복적으로 쓰인 것은 남의 것을 무단으로 복제하고, 또한 그로 인해 부당한 경제적 이득을 취하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중첩된 도둑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표절’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로 들어가 보면 이 용어가 가진 가장 뚜렷한 특징은 바로 ‘애매모호성’이라는 사실이다. 왜냐면 ‘표절’의 정의 안에는 어디까지가 표절(?)인가라는 범위와 기준이 명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넓게 본다면 이 세상에 100% 자기만의 아이디어나 표현이란 없다. 다중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세상이 발전해 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표절’의 정의는 우리에게 ‘표절’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가르쳐주고 있다고 볼 수 없다. 다만 ‘표절’이라 의심받는 저작물이 전체적으로 ‘원 저작물과 똑같거나 비슷하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표절’이라는 낱말이 신문지면을 어지럽게 수놓고 있다. 대중이 즐겨 부르는 가요에서부터 방송?영화와 광고는 물론 신문기사, 컴퓨터게임, 학문적 엄격성을 요구하는 논문에 이르기까지 표절의 행렬은 끝이 없어 보인다. 

 이미 황우석 교수의 연구논문 조작사건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작년에는 김병준 교육부총리 내정자의 논문표절 논란 등이 여론의 따가운 질책을 받았다. 또 연세대 마광수 교수가 제자의 시를 도용해 학자로서의 도덕적 부정직성을 드려냈다. 최근에는 고려대 이필상 총장이 제자의 논문 표절 의혹에 시달리다 결국 총장직을 사퇴하고 말았다.  

 이처럼 표절 논란이 잇달아 불거지면서 초등학생부터 대학교수까지 표절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표절공화국’의 풍토에 대한 자성이 일고 있다. 인터넷에 검색어만 입력하면 쏟아지는 이미지와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출처도 밝히지 않고 퍼나르고 다른 사람의 글을 마치 자신이 쓴 것처럼 미니 홈피로 가져가는 일이 허다하다. 심지어 초등학생조차 인터넷에서 일기 내용까지 그대로 베껴 쓰는 현상이 일고 있으니 어려서부터 표절불감증에 길들여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 학생들은 숙제를 할 때 인터넷이나 백과사전을 베끼는 일이 허다하지만 미국 학교에선 아예 꿈도 꾸지 못한다고 한다. 미국에 유학한 한국 학생의 말을 빌면 미국학교 교사들은 숙제를 내줄 때 분량, 글꼴, 글자크기 등을 세밀하게 지정한다는 것이다. 워드프로그램을 이용한 모든 숙제는 그 학교 표절 검색 프로그램에 들어간다. 한 문장에서 4단어 이상이 같으면 빨간 줄이 그어지고 이런 문장이 반복되면 표절로 간주된다. 표절로 간주되면 학점을 주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또 프랑스 학교에서는 3문장 이상이 같으면 표절로 간주되고  표절 사실이 드러나면 20점 만점에 4점 이상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은 국어교육의 경우 책이나 자료를 읽고 내용을 파악하는 등 지식교육에 역점을 두고 있다. 반면 미국에선 글을 읽고 에세이를 써보는 교육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이는 글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어떻게 느꼈는가를 쓰도록 하기 때문에 표절을 하기 어려운 구조가 아닌가 한다. 우리나라 국어교육도 올바른 글쓰기 교육을 주입해야 하며, 선진국처럼 표절 예방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표절은 곧 남의 지적재산을 훔친 범죄행위이다.